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프랑스 여행 파리 명소 판테온에 대해 알아보자

by totoday2 2025. 9. 16.

 

 

1. 팡테옹의 기원과 건축 배경

 

 

팡테옹은 파리 5구 라탱지구의 소르본 대학과 뤽상부르 정원 사이에 위치한 웅장한 건축물로, 프랑스 혁명과 함께 국가적 상징성을 얻게 된 건축물입니다. 원래는 종교적 목적으로 세워졌으나, 시대의 격변 속에서 국가적 기념 공간으로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이 건축물의 기원은 18세기 중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프랑스 왕 루이 15세는 심한 병을 앓고 있었는데, 회복되자 성녀 제네비에브,파리의 수호 성인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그녀에게 헌정할 대성당을 짓기로 합니다. 그렇게 해서 1755년 건축가가 설계에 착수했으며, 1790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수플로는 고전주의 건축양식을 도입하면서도 고딕 성당의 웅장한 규모를 결합시켰습니다. 결과적으로 팡테옹은 로마 판테온의 장중함과 프랑스 고전주의의 세련미가 어우러진 독특한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하는 코린트식 기둥과 거대한 돔은 파리 하늘에서 멀리서도 보이는 상징적인 요소로 자리잡았습니다.

 

 

1.건축적 특징

팡테옹의 외관은 장대한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킵니다. 정면에는 22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늘어서 있고, 그 위 삼각형 박공에는 ‘조국이 위대한 인물들에게, 위대한 인물들은 조국에’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팡테옹이 단순한 교회가 아닌, 국가의 위인들을 기리는 장소임을 드러냅니다.

내부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거대한 돔입니다. 높이 약 83m에 달하는 이 돔은 세 겹의 구조로 되어 있어 안정성과 장중함을 동시에 확보했습니다. 내부 장식은 프랑스의 역사적 장면들을 묘사한 벽화와 모자이크로 꾸며져 있습니다. 또한, 중앙 홀에는 프랑스 과학자 레옹 푸코의 유명한 푸코의 진자가 설치되어 있어, 지구 자전을 증명한 실험을 직접 볼 수 있는 과학적 상징 공간이기도 합니다.

 

 

2. 교회에서 국가 영묘로

처음에 팡테옹은 ‘생트-제네비에브 성당’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시대의 격변을 맞습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공화국 정부는 팡테옹을 교회 대신 국가의 위인들을 안치하는 영묘로 바꾸었습니다. 그때부터 이곳은 ‘팡테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는 ‘모든 신들의 신전’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프랑스에서는 ‘모든 위인의 신전’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었습니다.

혁명 이후 팡테옹은 여러 차례 용도가 바뀌었습니다. 왕정 복고기에는 다시 교회로 사용되었고, 제3공화국 때부터는 확실히 국가 기념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 팡테옹은 프랑스가 존경하는 위인들을 모시는 장소이자, 프랑스 공화국의 정신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건축물로 남아 있습니다.

 

 

3. 안치된 위인들

팡테옹에는 프랑스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정치가, 철학자, 문학가, 과학자, 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이들입니다.

볼테르 : 계몽주의 철학자이자 종교적 관용과 자유를 주장한 사상가. 1791년 혁명 정부에 의해 이곳에 안치되었습니다.

루소 :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한 사상가로, 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1794년 안치되었습니다.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과 노트르담 드 파리로 알려진 대문호. 1885년 장례식에는 수백만 명이 참석해 그의 국민적 위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에밀 졸라 :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 드레퓌스 사건에서 정의를 옹호하며 사회적 양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장 조레스: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의 지도자. 평화주의자로서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마리 퀴리: 노벨상을 두 차례 수상한 과학자.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팡테옹에 안치된 인물입니다.

 

현재까지 약 80명가량의 인물이 이곳에 안치되어 있으며, 새로운 위인을 모실 때마다 국가적인 논의가 이루어집니다. 이는 팡테옹이 단순한 묘지가 아닌, 프랑스 사회가 누구를 ‘국가적 영웅’으로 인정하는지 보여주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문화적 상징성과 의미

팡테옹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프랑스 정신을 담은 상징적 공간입니다. 계몽주의 사상, 혁명 정신, 공화국의 가치인 자유·평등·박애가 이곳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또한, 위인들을 모시는 행위 자체가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팡테옹은 문학과 예술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빅토르 위고의 장례식처럼 대규모 국가 행사들이 이곳에서 열리기도 하고, 영화나 소설에서는 파리의 상징적인 배경으로 사용되곤 합니다. 그만큼 파리 시민들에게 팡테옹은 역사와 문화의 기억을 공유하는 장입니다.

 

오늘날의 팡테옹

오늘날 팡테옹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파리의 대표적 명소 중 하나입니다.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어, 건물 앞에서는 파리 시내의 아름다운 풍경이 내려다보입니다. 내부에서는 푸코의 진자를 감상하거나, 지하 납골당에서 프랑스의 위인들을 직접 기릴 수 있습니다. 또한, 전시와 안내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어 팡테옹의 역사와 건축적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라탱지구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 소르본 대학이나 뤽상부르 정원, 생트-에티엔 뒤 몽 성당 같은 주변 명소와 함께 둘러보기에 좋습니다. 학문의 중심지와 역사의 현장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팡테옹입니다.

 

 

정리

팡테옹은 본래 파리의 수호 성인 제네비에브를 기리는 교회로 세워졌지만, 혁명 이후 국가의 위인들을 기리는 영묘로 변모했습니다. 장대한 건축과 돔, 푸코의 진자, 그리고 볼테르·루소·빅토르 위고·마리 퀴리 등 불멸의 인물들이 잠든 곳으로, 프랑스의 역사와 정신을 가장 웅장하게 담아내는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팡테옹은 파리를 여행하는 이들에게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프랑스가 자랑하는 문화적·역사적 기억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현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