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분주한 거리를 떠나, 아침 기차를 타고 지베르니(Giverny)로 향했어요. 한 시간 남짓 달려 베르농 역에 내리니, 작은 마을 특유의 고즈넉한 공기가 저를 반겨주더군요. 역 앞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모네의 집으로 향하는 동안 창밖에 펼쳐진 들판과 시골 풍경이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았어요. “아, 모네가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 알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꽃길을 걷는 기분, 화가의 정원
입구를 지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건 화려한 꽃길이었어요. 튤립, 장미, 양귀비, 아이리스… 이름을 다 외우기도 힘들 정도로 색색의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저를 맞이했죠. 향기로운 꽃내음과 벌들의 윙윙거림까지, 오감이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꽃밭 사이 작은 오솔길을 걸으며 모네가 직접 손길을 더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렸어요. 화가의 붓 대신 삽과 물뿌리개로 가꿔낸 정원이라니, 정말 살아있는 캔버스라는 표현이 어울렸습니다.
분홍빛 집, 모네의 생활
정원 끝자락에 자리 잡은 모네의 집은 분홍빛 벽에 초록색 창문이 달린 아담한 건물이었어요. 내부에 들어서니 모네가 모아온 일본 목판화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죠. 그의 화실은 햇빛이 넉넉히 들어오는 큰 창 덕분에 아직도 물감 냄새가 남아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집 창가에 서서 바깥 정원을 바라보니, “아, 여기서 바로 그림을 그렸겠구나”라는 생각에 괜히 뭉클해졌습니다.
수련 연못, 그림 속으로 들어간 순간
모네의 정원에서 가장 기다리던 순간은 바로 수련 연못이었어요. 초록빛으로 칠해진 아치형 다리를 건너는 순간, 저는 마치 모네의 수련 연작 속에 들어온 듯했어요. 잔잔한 물 위에 수련잎이 둥둥 떠 있고, 하늘을 가린 버드나무가 은은히 드리워져 있었죠.
바람이 불 때마다 수면 위에 반짝이는 햇살과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가 겹쳐져, 그대로 한 폭의 인상주의 풍경이 완성됐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카메라를 꺼내지 않고, 눈으로 마음껏 담고 싶었어요.
여운을 즐기며
정원을 둘러본 후에는 작은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셨습니다.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은 여전히 모네의 작품 속 같았고, ‘빛과 색을 사랑한 화가’가 얼마나 섬세하게 자연을 관찰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어요.
여행 후기
모네의 정원은 단순히 “관광지”가 아니라, 화가의 영혼이 깃든 장소였습니다. 파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렇게 고요하고 예술적인 공간을 만날 수 있다니… 예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감동할 곳이라고 생각해요.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꼭 계절을 달리해보고 싶습니다. 봄의 꽃, 여름의 수련, 가을의 단풍… 모네가 사랑한 사계절의 빛을 다 만나고 싶거든요.
계절 따라 달라지는 모네의 정원 여행기
봄 – 꽃의 향연 속을 걷다 (4~5월)
지베르니에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건 봄의 기운이었어요.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눈앞을 가득 채운 건 형형색색의 튤립이었죠. 빨강, 노랑, 보라, 흰색… 색의 향연이 파도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모네의 붓이 아니라 자연이 직접 칠해놓은 캔버스 같았어요.
아이리스와 양귀비도 여기저기서 피어 있어 발걸음마다 새로운 색을 만나는 기분이었죠. 햇살까지 부드럽게 내려앉아, 꽃 사이를 걷는 제 그림자가 그림 속 한 인물처럼 느껴졌습니다.
여름 – 연못 위에 피어난 수련 (6~8월)
여름의 모네의 정원은 단연 수련 연못이 주인공이에요. 한낮의 햇빛이 연못에 비치면, 초록빛 수련잎 위에 하얀 꽃과 분홍빛 꽃이 둥둥 떠 있었어요. 작은 물결이 칠해질 때마다 빛이 부서져 반짝였는데, 정말 모네의 수련 연작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녹색 아치 다리 위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은 감동 그 자체였어요. 다리 아래로 고개를 숙여보니 제 모습이 수면에 비치고, 그 위로 수련이 살포시 떠 있어, 마치 그림 속 주인공이 된 듯했습니다.
정원 곳곳에서는 라벤더와 장미가 만발해 있었는데, 여름의 햇살과 어우러져 향기가 바람에 실려 퍼지더군요. 그 순간, 모네가 하루 종일 이곳에서 빛과 색을 관찰했다는 말이 이해됐습니다.
가을 – 황금빛으로 물드는 정원 (9~10월)
가을의 지베르니는 또 다른 분위기였어요.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진 건 차분함과 따스함이었습니다. 꽃들은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대신 나무들이 노랑, 주황,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수련 연못 위에 드리워진 버드나무 잎은 금빛으로 반짝였고, 연못 표면에는 낙엽이 살짝 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은 모네의 화려한 수련 작품과는 또 다른, 더 고요하고 사색적인 풍경이었죠.
가을 햇살은 여름보다 한결 부드러워, 정원을 산책하다 보면 “아, 인생의 오후 같은 시간”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따뜻한 홍차를 마시며 바라보는 정원은 정말 낭만적이었어요.
겨울 – 닫혀 있는 정원 (11월~3월)
겨울에는 아쉽게도 모네의 정원이 문을 닫습니다. 하지만 눈 덮인 지베르니 마을 사진을 본 적 있는데, 하얀 눈 위에 잠들어 있는 정원이 또 다른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더군요. 모네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 겨울의 빛도 언젠가 그려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절마다 달라지는 매력
봄: 화려한 꽃의 향연
여름: 수련과 녹색 다리의 절정
가을: 고요하고 황금빛 정원
겨울: 휴식의 계절